인천 송도 신도시에 24시간 열리는 전시장이 한시적으로 들어섰다. “삼중점 (Triple point)”의 전시장은 신축건물의 빈 상가 자리에, 엄밀히 말하면 용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장소를 잠시 점거한 화이트큐브이다. 전시를 찾은 사람들은 삼면의 쇼윈도우를 따라 남은 하나의 흰벽을 축으로 진자 운동을 하듯 관람하게 된다. 도심 속 쇼윈도우를 향해 회전하며 행진하는 조용한 의례가 펼쳐지는 시간, 몇 개의 전시된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압력이 관람객의 응시를 붙잡는 이 곳은 ‘삼중점(Triple point)’이다. ‘삼중점(Triple point)’이란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의 세가지 상태가 균형을 유지하여 공존하는 특정한 온도와 압력의 지점을 말하는 화학용어이다. 이번 전시는 국동완, 민경, 이민하 세 작가의 각기 다른 시간대의 작업을 송도 신도시 신축건물의 쇼윈도우 공간으로 호출하여, 물질상태로서의 작품, 텍스트, 말의 형태가 공존하도록 구현하고 있다.
전시장 쇼윈도우 가장 가까이에는 하얀 벽을 배경으로 국동완 작가의 흰 색 조각 작품이 전시되었다. 국동완 작가는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드로잉과 페인팅, 조각 작업으로 꾸준히 탐색해오고 있다. 그가 꿈 아카이브 작업을 지속하면서 꿈의 단편과 기억, 텍스트로의 기록은 자연스레 책과 말의 조각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꿈의 기록을 책장 안에 정렬된 책의 모습으로 조각화하는 <Perfect Bookcase> 시리즈의 첫 작업인 <Perfect Bookcase #1>과 2008년부터 시작된 <Finding the Place> 사진 연작을 위한 문장 ‘여긴 처음 보지만 어렸을 때부터 놀던 곳이다’를 새롭게 조각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글자의 내부를 가림으로써 언어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관람객은 언어의 기능을 상실한 채 글자의 볼륨을 하얗게 응축한 나무 덩어리의 면적과 실루엣을 새롭게 마주함으로써 꿈이 언어로 번역될 때 놓쳐버린 기억을 더듬게 된다.
민경 작가는 나쁜 꿈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는 2018년 개인전 ‘거기에 있지만 항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에 대해’에 출품했던 <나쁜 꿈(악어)>사진 작품 두 점과 <정오의 희망곡(오해)> 작업을 텍스트로 전시하고 있다. 그는 등장 인물들의 매우 사적인 드라마를 글로 쓰고, 드라마 속 우울, 불안, 비관이나 나쁜 꿈의 형상을 종이탈 위에 그린다. 무엇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불운하고 기괴한 형상이 그려진 종이탈을 뒤집어 쓴 인물은 그 탈이 만들어 낸 온전히 사적인 공간 속에서 안식을 찾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불안한 악몽과 안온한 일상은 어쩌면 한낯 종이의 두께를 사이에 둔 삶의 양면성이며, 점이 아닌 선으로, 면으로 접히고 구부러지며 입체적 현실로 이어진다.
여성의 임신은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경험이다. 이민하 작가는 2019년 임신 8개월차인 자신의 몸을 프로젝트 영상작업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는 2019년 <출산의례의 재구성>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영상작업을 새로 음악을 덧입혀 22분30초의 러닝타임으로 재편집해 선보였다. 이 작업은 산모의 몸을 통로로 새로운 생명이 삶과 미생의 경계를 넘어서는 출산의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산모의 출산의례를 도우는 4명의 남녀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가족 이야기를 고백하듯 검은 잉크로 정성스레 기록하고 다시 물로 씻어낸다. 작가는 산모의 몸으로 그 검은 잉크물을 마시며 자신의 몸속 태아의 생명과 교감한다. 관람객은 산모의 태아에 도달하게 될 검은 물, 세속의 번민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비로소 씻겨내는 그 의식을 견디어내고 곧 맞이할 새로운 생명을 기원하는 의례에 압도당한다.
“삼중점”의 전시장은 세 작가의 의례를 위한 하나의 무대이다. 물질인 작품, 텍스트, 말의 형태로 다른 시간대, 다른 이야기가 한 시에 드러나는 현장, 그 삼중점에 세 작가는 주목한다. 도시 속 쇼윈도우를 사이에 두고 관객의 응시를 오로지 받아내는 그 곳은 흡사 제의의 장소이다. 예술은 시공간의 문제를 지배받지 않는 배출구라는 마르셀 뒤샹의 발언처럼, 누군가의 악몽 혹은 기대하는 꿈과 덧없음, 세속의 속죄와 생명의 감사함이 한바탕 뒤섞이고 중력의 힘을 거슬러 쇼윈도우 밖으로 그렇게 배출된다. [ ]
오후엔꽁티
삼중점
기간: 2021.6.1. - 6.14. 24시간 전시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신송로 154, 송도 더 제니스 128호
작가: 국동완, 민경, 이민하
기획: 정다운
참고: 연수문화재단 후원, 갤러리아트독 주최
* 전시 정보는 인스타그램 @_triple__point_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는 갤러리 아트독이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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