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몇 년이나 길고양이 밥을 줘 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 내가 얼마나 많은 돈과 희생을 해왔는데... ”
“ 이 아이들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내 새끼라구 ”
" 예술가라 역시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하시네요 "
“ 그런 말들을 하는 건 우리 모임의 순수성을 해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겁니다. ”
몇 해 전이었다. 한때 업종 변경을 생각할 만큼, 열심히 했던 동네 고양이 보호 활동에서 재건축 관련 문제로 첨예하고 복잡한 상황과 감정적이고 예민해진 관계들이 얽혔을 때 들었던 말들. (더 심한 말도 있었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생략한다.) 당시 문제의식을 조금 공유했지만, 각자 상처와 책임으로 애써 거리를 두고 있었던 그가 지나가는 말로 잡지를 내고 싶다 했고, 나는 말랑한 고양이 이야기나, 캣맘들의 희생이나 길고양이의 불쌍함을 포장하려면 하지 말라는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이사를 핑계로 관계적 활동을 끊고 혼자 가능한 활동만 했고, 꾸준히 관련 사회 문화 활동을 하던 그는 결국 <magazine tac!>(이하 탁!)을 만들었다.
고양이에 관한 인식을 비틀어 보겠다며 고양이 cat의 철자를 거꾸로 쓴 tac이 잡지 이름으로 2021년 6월 창간호 주제는 ‘집과 고양이’ 이다. 재건축 고양이 이주 활동가, 고양이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고양이 탐정, 대학교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탁!에서 호명하는 고양이는 ‘길고양이’에 가깝다. 인간의 도시를 영역으로 포식자이지만 혐오와 학대의 대상이기도 하고 안쓰러움과 보호의 대상이기도 한. 예전엔 ‘도둑고양이’였지만 최근 국립국어원에 ‘길고양이’로 불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네 고양이로’ 부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시 ‘고양이’로 호명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순간 만들어지는 많은 선입견에서 거리를 두려는 의미일 것이다.
구조와 입양 방법을 단계로 나누어 자세히 안내하고, 구조와 입양 활동의 사례와 내용을 담으며 ‘구조는 지는 마음으로’라고 표현했는데, 한번이라도 구조부터 입양까지 과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주 아프고 절절하게 공감할 것이다. 탁!은 꽃집, 회사, 성곽, 출판사, 치킨가게를 집으로 삼는 고양이들이나 길고양이들을 위해 활동가들이 만들거나 구입하는 다양한 집의 형태들을 소개하는데 이 부분 역시 오늘의 집이나 SNS에 올라오는 인테리어 속 고양이 사진이나 집과는 다르다. 물론 명화, 영화 책 속의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고양이 콘텐츠를 소개하는 부분도 있다. 학교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교사, 사라진 도시의 기억에 관한 작업과 전시를 함께 한 기획자, 인간 너머 도시 지리학을 이야기한 연구원, 구조와 임보 입양 활동을 하는 개인 활동가의 에세이는 앞선 인터뷰와 내용적으로 유사하거나 중복된 방향이 많아 가장 아쉽다. 인터뷰가 현장 활동의 과정과 내용을 듣는 부분이라면, 에세이는 집과 고양이라는 창간호 주제에 대해 보다 이전 관점이나 논의를 조금 더 넓혀주거나 깊게 해줄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어땠을까.
사실 이미 넘쳐흐르는 고양이 문화 콘텐츠에서 탁!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잡지 이름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창간호 전체 흐름은 길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톡!’하고 환기하는 정도에서 타협(?)한 듯한데, 매체 형식이 대중 잡지이고 대상 독자 대부분 고양이를 좋아하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호의를 갖고 보호하려는 사람들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러 상황과 이유로 무척이나 고심했을 창간호 이슈와 내용이었다고 짐작하지만, 그러한 소재나 내용은 결국 어느 정도 지나면 기존 고양이 콘텐츠와 닮아 갈 수밖엔 없다. 과연 탁!은 실제 길고양이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층적인 정치, 사회관계들을 정말 조금이라도 끄집어 내 마주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길고양이를 내 새끼로 부르며 희생과 선행의 투쟁적 활동가이거나 개체론적 사고로 불화를 조장하는 이기주의자들의 스펙트럼에 있는 인간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정말 인간들이 고양이에 갖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선입견, 로망, 욕망들이 덕지덕지 붙은 뒤통수를 탁하고 가격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인간과 고양이가 공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고양이를 포함한 더 많은 비인간 존재들)들이 공명하는 도시를 희망할 수 있을까.
누군가 길고양이 활동을 하는 내게 좋은 일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한다고 할 때, 말한다. 착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도시 생태계 구성원인 고양이가 동네에서 생로병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간의 책임을 조금 할 뿐이라고. 고양이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지역, 도시가 다양한 공동체와 관계 맺고 있음을 인식하고 다른 전환을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처음이 길고양이이라고. 그래서 탁!의 앞으로 이슈와 태도가 고양이의 귀여움이나 길고양이의 불쌍함 그리고 활동들을 낭만화하지 않고, 더욱 섬세하고 예민하고 애매해지길 바란다. [ ]
유운
* 본 글은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육성지원 사업의 선정후원으로 발간한 <magazine tac!>의 창간호 리뷰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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