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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동네 미술의 무난한 내일을

by 동무비평 삼사 2021. 8. 29.

지난해 여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에 모인 우리동네는 모두 228곳이다. 228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강원도의 18개 시와 군이 모두 포함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수가 총 240개니, 228곳 가운데 강원도 기초단체가 모두 포함된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강원도 내 사업 현장은 거리 담장과 건물 외벽, 문화예술회관 또는 전통시장과 그 주변, 기차 역사나 바닷가 백사장 등 대개 공공미술하면 으레 소환되는 곳들이다(<표> 참고). 우중충하다는 이유로 지역 출신 예술인의 얼굴 그림이 덧입혀지고, 지나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이유로 기념비적인 조형물이 보태졌다. 명품이 사치품의 다른 이름으로 종종 읽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몇 지자체가 내세운 명품거리’(동해시), ‘명품도시’(삼척시)를 위한 공공미술은 알록달록한 당의정에 불과하다는, 지나친 단맛의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

 

<표>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 강원도 사업 내용. 참여 작가팀 공고문에 적힌 사업 유형은 △벽화·평면/입체조형·미디어아트 등 ‘작품 설치형’ △주민이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공동체 프로그램형’ △문화적 ‘공간 조성 및 전시형’ △사진·다큐멘터리 영화와 같은 매체를 활용해 지역 문화를 기록하는 ‘아카이브 구축/전시형’(지역 기록형) △공공장소의 낙후한 경관을 개선하고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도시 재생형’ △앞의 유형들을 섞는 ‘복합 추진형’, 이렇게 6가지다. 강원도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이 중 ‘작품 설치형’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승은
평창군은 3개 작가팀을 꾸려 각각 KTX 진부역, 평창역, 그리고 평창문화예술회관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위의 사진은 평창문화예술회관 진입로 옹벽에 평창 8개 면을 대표하는 경관을 그린 작업의 일부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평창문화예술회관이다. ⓒ평창군문화예술재단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시간의 때가 묻은 길, 을씨년스러워 오히려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빈터, 인간의 발길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연은 새 옷을 입혀달라거나 새것을 사달라 한 적 없다. 윤색되고 장식되기 전 헛헛한 장소를 그리워하는 까닭은 전시행정에 급급한 지자체의 안이함에 분노하기에 앞서 공공미술 사업의 당사자인 지역 미술인과 주민의 공감대가 부실한 고질적 문제에 다시금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 막다른 골목 앞에서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사업 이전을 아쉬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지 않나.

 

 강릉준법지원센터(춘천보호관찰소 강릉지소) 건물 앞 흡연공간. 강릉시 작가팀(새봄)은 부스의 외벽을 사진기처럼 꾸미고, 그 위에 도자기로 만든 새 조형물을 올렸다. 사진기 렌즈에 해당하는 부분에 볼록 거울이 달려 있다. ⓒ한승은

 

사업의 전말을 성토하는 세간의 쓴소리에 문체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일자리 사업이며 작품성엔 관여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말이 어이없는 까닭은 공공미술의 공공성에서 작품성을 분리하는 문체부의 몰지각함에 있다. 공공미술의 작품성은 공공성과 맞물린다. 미술계에 몸담은 전문가가 따지는 공공미술 작품의 작품성은 자칫 그들의 빈말일 수 있다. 전문가의 감상이 아니라, 새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동네 주민의 경험이 작품성을 가늠하는 잣대라면 잣대다. 공평함()이 공통되는(), 즉 모두에게 평등한 미술의 작품성은 작품을 뜯어보기 바쁜 평단의 찬사 또는 비난에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이 그것과 부대끼는 시간이 흐르며 그 존재 가치를 시나브로 ()발견하는 일상 속에 살아 있다.

 

미술인 일자리 지원주민 참여를 모두 충족하는 공공미술 사업 모델은 지역 미술인과 주민의 상생 기반을 미술에서 찾는 공공성의 문법에 충실하되, 그 발화는 유연해야 한다. 지자체가 고른 사업지들은 무난하다면 무난하지만, 이 무난한 장소들에 얽매인 상상력은 문법을 답습하는 안일함에 빠지기 쉽다. 지역 주민이 찾고 싶은 장소도, 지역 미술인이 이력에 넣고 싶은 장소도 못 되는 공공미술 전시장은 사업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후의 시간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장소도 못 된 거기는 시간이 흐른 덕분에 가까스로, 우리가 있는 여기가 된다. 작품이 낡아가는 시간은 사람들이 작품과 공존한 시간이다. , 기다린 덕분에 제법 친근한 우리 동네 미술이 됐다고 얼버무리며 다음을 기약해선 안 된다.

원주시 학성동 역전시장 골목. 점포 유리문은 글라스 페인팅으로, 외벽은 타일 부조로 꾸며졌다. ⓒ원주시

 

공공미술에 대한 몰이해부터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역량의 역부족 등 빤히 보이는 문제가 수두룩한데, 이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비관하고 싶진 않다. 양구군 작가팀은 조만간 시니어 컬러북을 출간해 지역 노인복지시설에 배포할 예정이다. 아마추어 미술가와 발달장애인 등 사업에 참여한 주민이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진 색칠놀이 책은 지역 노인을 위한 미술 치료 활동에 쓰인다고 한다. 더 많고 다양한 사람이 미술로 관계 맺고 미술을 누리길 바라는 공공미술의 취지는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정해진 사업 기한이라는 시간과 주어진 사업지라는 장소 밖으로, 1,000여권 책이 되어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미술의 공공성에서 희미하게나마 청신호가 켜진 걸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원주시 작가팀은 사업지인 전통시장 내 동네미술관을 열고, 폐점포를 공방으로 활용하면서 시장 상인의 이웃이 됐다. 사업 일부로 진행하는 주민 참여 프로그램 너머, 사업 기간과 무관하게 주민과 미술인이 공존하는 우리 동네에서 상생의 기미를 본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공 행정의 치적용 흉물로 전락한 공공미술의 작품성을 재고(再考)하고 제고(提高)하는 가능성은 꿈도 꾸지 말자는 비관에 젖고 싶진 않다. 감추고 싶은 선례에서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 어렵지 않은 미술을 긷는 세심한 상상력을 주문한다.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말랑말랑하게 주무르는 상상력, 곳곳에 포진한 미술의 모난 문턱을 둥글둥글하게 매만지는 세심함. 이런 역량을 키워가는 공공미술의 다음 단계를, 그들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부디 낙관하고 싶다. [ ]

한승은

 

 

* 본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비 지원 사업 2020 공공미술 문화뉴딜 프로젝트 <우리동네 미술>에서 강원 지역 현장에 관한 필자의 리뷰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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