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로 시국을 상쇄하다.
7월 9일, COVID-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 국무총리 김부겸)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리두기 4단계의 시행을 발표했다. 다중이용시설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별 수칙을 보면, 거리두기 4단계에서 ‘3그룹 시설’에 속하는 영화관 · 공연장은 ‘동행자 외 좌석 한 칸 띄우기’, ‘공연 시 회당 최대 관객 수 5,000명 이내로 제한’, ‘22시 이후 운영제한’의 운영지침이 세워졌다. 또한 ‘기타시설’의 박물관 · 미술관 · 과학관의 경우에는 ‘시설면적 6㎡당 1명의 30%’, 전시회 · 박람회의 경우에는 ‘시설면적 6㎡당 1명’으로 제한하는 운영지침이 마련되었다.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날들을 돌아봤을 때, 무조건적인 폐쇄는 아니기에 지역의 문화예술도 이제야 숨통이 트일 수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가 싹텄다.
하지만, 하나의 문장이 커다란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문제가 된 건 다름 아닌 단 네 글자 ‘행사 금지’였다. COVID-19 대유행을 억제하기 위해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 · 전시는 인파가 군집하는 행사로 구분되어 금지되었다. 물론 모든 예술 활동이 행사로 간주된 것은 아니었다. ‘정규 공연 · 전시 시설’에서 진행하는 공연 · 전시는 방역수칙 준수 하에 허용되었으나, ‘등록되지 않은 다중이용시설’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 전시는 행사로 분류해 여지없이 금지된 것이다.
결국, 공간의 폐쇄로 COVID-19 시국을 상쇄해버린 셈이다. 정규 시설뿐 아니라 정규 시설로 등록되지 않은 다중이용시설에서도 철저한 방역과개인 소독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쓰고 있었는데 정부의 지침이 아쉽게 느껴졌다. 여기서부터 ‘비대면 전환’ 즉, ‘비대면 전시 개최 · 비대면 콘텐츠 제작’이라는 모두가 원치 않는 결과가 도출되어 버렸다.
실무자와 예술가 모두가 원치 않는 '비대면 전시'
이제부터는 내가 활동하고 있는 연수구로 그리고 시각예술 장르로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역의 예술인 및 예술단체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의 실무자로서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COVID-19 때문임은 자명하지만 조금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연수구 관내 전시 공간의 부족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물론 연수구에도 국 · 공 · 시립기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가 여럿 있다. 연수구의회에 있는 ‘연수갤러리’, ‘청학문화센터의 전시실’, ‘인천평생학습관 갤러리 나무 · 다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G타워 갤러리’, ‘인천여고 빛여울 갤러리’, ‘옥련여고 연정 갤러리’, ‘청학도서관 YCL 도서관 갤러리’가 국 · 공립 전시시설이다. 그리고 ‘인천시립박물관 갤러리’, ‘인천도시역사관 아암홀’ 등이 시립 전시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자체 연간 기획전시가 계획되어 있거나, 학교 내 시설이라 보수적 운영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관내 예술인(단체)가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현실적으로 대관 가능한 장소는 ‘연수갤러리’, ‘청학문화센터 전시실’로 제한되고 있다. 민간 공간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겠지만, 연수구에는 아직 전시를 개최할 만큼의 인프라를 갖춘 갤러리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존재하는 민간 갤러리들은 지원사업으로 전시를 운영하는 예술인(단체)에게 화중지병과 같은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두 전시시설은 COVID-19라는 질병이 창궐하기 전 · 후 할 것 없이 대관 문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제는 윗글에서 언급했듯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의 ‘다중이용시설 집합 금지’ 지침이 이 두 갤러리를 강타했다는 점에 있다.
결과적으로 2021년 여름과 가을은 반복적인 전시 일정의 연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연기는 사업 포기와 사업비 반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연수구민의 시각예술 향유 기회와 전시의 예술적 완성도의 감소를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지역 예술인(단체)의 생존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는 기간에 계획되어 있던 전시에 한하여, ‘비대면 전시’로 전환해 사업 수행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구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실무자의 난처한 입장과 제대로 된 예술을 보여줄 수 없는 작가의 답답한 마음은 같았으나 ‘어떻게든 예술 활동을 이어나간다’라는 공통된 목적성이 더욱 중요한 상황이었다. 결국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비대면 전시’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개최된 대부분의 ‘비대면 전시’에서 ‘대면 전시’를 대체할 만한 감동이나 가치를 발견하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내가 본 대부분의 ‘온라인 전시’는 제대로 된 큐레이팅 없이 작품을 그저 영상으로 나열하거나 작품의 정보만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형태로 진행했고, 시청자의 니즈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카메라 동선이나 산만한 프레임은 오히려 눈의 피로도만 쌓이게끔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대감으로 접근한 VR 기반의 온라인 전시 또한, 온라인 공간을 방문한 방문객이 원하는 동선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엔지니어에 의해 설계된 동선으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영상으로 제작한 전시와 VR 온라인 전시할 것 없이 도저히 전시에 깊이 집중하여 작품에 감명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는 지점에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가 있었고 ‘대면 전시’의 대체가 아닌 하나의 장르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신용진 <존재의 확률> 1유튜브 채널을 통한 온라인 전시
‘신용진’의 <존재의 확률>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주사위의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이어 더 큰 주사위가 던져지고 주사위에 적혀있는 코드에 맞춰 기타의 선율이 공간을 메운다. 주사위가 던져지는 대로, 코드가 보이는 대로 이전과 똑같지 않은 새로운 확률의 소리가 공간에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의 매 순간이 확률의 집합체라는 것을 일깨워주듯이 말이다.
신용진 작가의 다원 예술은 같은 공간이 아닌 모니터, 스마트폰을 통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철저히 각자의 ‘존재의 확률’이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준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확률로 전체라는 공통된 확률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인생이 마치 이 영상 안에 축약된 듯하다.
갤러리 아트독 주최 <삼중점> 2 비어있는 상가를 활용한 비대면 전시
‘갤러리 아트독’이 주최한 <삼중점>은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차가운 도시의 색을 사람(예술가)과 사람(구민)이 연결되는 따뜻한 온기의 색으로 바꿔주는 전시였다. 비어있는 상가를 하나의 갤러리로 탈바꿈하여 유리창 너머로 가깝지만 멀게 존재하는 예술을 마주하게 된 도시인들은 일종의 위로를 느꼈다고 이야기를 전해왔다. 일명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권역)’ 이라 불리는 곳에 예술작품이 있었으니 “전시를 보러 간다.”가 아닌 “전시가 보러온다.”가 더 맞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나오면, 작품은 그대로 공간에 머물러 있고 나만 그곳에서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온전히 전시와 동화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애초에 공간 밖에서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내 일상에 전시가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온라인’의 단점을 최소화하며, ‘비대면’이라는 시대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두 전시는 작품 자체의 예술성이나 의미에 대한 비평은 차치하고 연수구의 전시 시설 부족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비대면 전시’의 사례로 다룬 것임을 밝힌다. 하지만 두 사례는 ‘코로나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모두에게 나름의 시사점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기획된 작품을 담아낼 ‘전시 플랫폼의 다각화’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그것이다. 단순히 흰 벽으로 된 벽에 액자를 걸고, 바닥에 오브제를 설치하고,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는 것 이상의 플랫폼에 대한 연계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투명한 창을 통해 개방적이지만 폐쇄적인 공간성을 제시하는 비어있는 상가는 내 일상에 전시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기회를 창출했고, LCD를 통해 단절된 공간성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온라인 채널은 각자의 자아를 성찰하게끔 해주었다. 전시의 기획에 따라 작품에 깊이 몰입될 수 있고 때론 철저히 분리될 수 있는 플랫폼의 구축은 앞으로 예술가 · 기획자 · 행정가들이 함께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연수구가 가지고 있는 전시 공간의 부족은 ‘전시 플랫폼의 다각화’가 중요한 해결책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의 유형(물리적 공간)이나 무형(가상의 공간) 공간 할 것 없이 최대한 많은 공간을 예술인에게 마련해주고 또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돕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공공기관에 맡겨진 미션이 될 것이다. [ ]
정효민
* 본 글은 연수문화재단 지원 사업 중 비대면 전시에 관한 리뷰입니다.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 존재의 확률
온라인 상시 관람 (youtu.be/sgGAn0cixeE) [본문으로]
- 삼중점
인스타그램 @triple_poin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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