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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안정한 산실 속에서

by 동무비평 삼사 2021. 9. 26.

인천아트플랫폼은 올해 7월부터 2021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입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전시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 중 8월 말 인천아트플랫폼의 G1 전시실에서 진행된 입주 예술가 양지원, 최수련의 짧은 4일간의 2인전 <산실 室(Everything I Want to Do Is Nonproductive)>(이하 <산실>)에 대한 나의 단상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산실>은 기획자 하에 기획된 전시가 아니라 입주 작가들의 작업을 간략하게나마 보여주는 프로젝트 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덩그러니 자신들의 작업물을 늘어놓고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두 작가가 전시 제목으로 삼은 '산실'은 '어떤 일을 꾸미거나 이루어 내는 곳, 또는 그런 바탕'을 뜻한다. 창작자에게 산실은 어떤 의미일까? 두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선택한 월드로잉의 방식은 작업공간과 전시장을 한시적으로 점유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두 작가는 전시장 공간 자체를 '산실'로 여기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월드로잉이란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전시장에서 우리는 벽면을 채운 두 작가의 월 드로잉을 마주한다. 왼편의 벽에서는 동양적인 이미지와 언어들이 뒤섞인 최수련 작가의 드로잉을, 오른편의 벽에선 글자인지 드로잉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양지원 작가의 드로잉을 볼 수 있다. 최수련 작가의 <표어연습>에는 작가가 이전부터 꾸준히 차용해온 동양적 이미지인 꽃, 산수도 그리고 동양 여성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며 그 위로 누군가는 읽을 수도, 누군가는 읽을 수 없는 한자와 영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작가는 벽 위에 색색의 아크릴을 연하게 여러 번의 붓질로 레이어를 겹쳐 쌓아 올렸다. 그려진 이미지와 글씨에 사용된 다양한 색들은 후에 채워질 색을 암시하는 듯하다. 작가의 드로잉은 어느 하나 유독 강조된 것 없이 전체적으로 일정하게 희미하다. 그가 쌓아 올린 연하지만 치밀한 여러 겹의 레이어는 드로잉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고, 채색에 들어가기 전의 스케치 단계에 멈춰 있게 한다. 완성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듯 작가는 흐릿한 흔적만을 벽면에 남긴다. 

최수련, <표어연습> 전시 전경

최수련 작가의 드로잉과는 상반되게 양지원 작가의 <JWY.D.01.21>은 전시장 반대편 벽에서 그 존재를 강하게 드러낸다. 양지원 작가는 콩테, 목탄, 오일 파스텔, 페인트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벌써 강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재료들로 벽 위에 드로잉을 남겼다. 드로잉의 한 이미지는 붓글씨를 연상시키기도, 수학 기호를 연상시키기도, 또는 알파벳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지에서 연상된 것일 뿐 명확하게 붓 글씨의 한 획인 ‘ㅡ’이라던가 알파벳 ‘n’, 또는 수학 기호 ‘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작가의 드로잉은 글자에서 시작된 것인지 이미지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를, 글자와 이미지 사이를 오간다.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이미지 혹은 글자들 주위에는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이 보이는 파편들이 있다. 파편들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모여 오른쪽 벽면으로 옮겨간다. 옮겨간 벽면 위에서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드로잉은 벽면에 붙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양지원, <JWY.D.01.21> 전시 전경

벽을 기준으로 상반된 느낌을 주는 두 작가의 월드로잉은 좁은 공간을 어쩔 수 없이 공유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희미함과 진함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오히려 이 전시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나는 엮이지 않는 듯한 이 경계면에 왜 매력을 느꼈는지 작업자와 공간의 범주에서 생각해보았다. 작업자는 스스로 작업할 공간과 작업을 전시할 공간을 계속해서 찾아 나선다. 마땅한 공간을 찾더라도 그 공간은 그들에게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양지원과 최수련 작가에게 인천 아트플랫폼 역시 작업 공간으로서든 전시 공간으로서든 끝이 있는 공간이다. 이 곳에 전시된 작업물에서 나는 끝이 정해진 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를 감히 상상해본다.

 

한 편에서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작업의 시간이 곧 사라짐을 순응하듯 세세하게, 그렇지만 희미하게 떠날 준비를 미리 하는 모습 같기도 혹은 작업이 완성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을 잡는 모습이 상상된다. 이와 반대로 다른 편에서는 필연적으로 사라지더라도 존재했다는 인상과 흔적을 남기고픈 심정인 듯 강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옆으로 퍼져나가 공간 전체를 물들이겠다고 소리치는 모습이 상상된다. 한정된 시공간이라는 현실에 보다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이러한 이들의 시도는 지속될 수 없는 산실에 대한 불안정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실> 전시 전경

작업자에게 있어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는 화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써내려 온 나의 말이 퍽 특별한 감상도, 허무맹랑한 상상의 이야기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이 작가들처럼 계속 작업을 해나가고 싶은 한 사람으로 느끼고 들었던 감정과 생각의 나열이다. 마지막으로 영속성과 지속성이 없는 불안정한 공간의 이야기에 덧붙여 예술가들이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인천 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동시대의 삶과 미술은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확언할 순 없지만 유목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묶인 제한에서 벗어난 삶과 예술은 예전보다 더 다양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는 유목적인, 탈영토화된 삶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머무르는 장소들은 어째서인지 다시 동질화 되고있다. 예를 들자면, 인천 아트플랫폼 레지던시의 일부인 해당 전시실 역시 여느 화이트큐브 전시장과 다름 없는 기능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질화 된 장소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지역 레지던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은 무엇일까? 지역성을 지닌, 지역 구성원들인 관객과 통합될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어야 할까? 그렇지만 오히려 지역성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적 정체성이 창작자들을 제도 안에 묶어 둘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역 레지던시는 결국 물리적 빈곤을 겪는 예술가들에게 단순히 지원금과 공간을 제공하는 제도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내가 일단 던지고 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지, 질문이 유효할지 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순적인 욕심과 질문에 관한 논의가 미술계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더 나은‘산실’이 만들어질 그 날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 ]

 

정희재

 

 

산실 産室

기간: 2021.08.19. - 2021.08.22.

장소: 인천아트플랫폼 G1 전시실

작가: 양지원, 최수련

참고: 2021 인천아트플랫폼 창 · 제작 프로젝트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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