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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9

문화적 불연속성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의 전략 이주와 이산의 경험이 인간 정체성을 구축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현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의제들 중 하나와 연결된다. 초국적인 세계 체제하에서 이주 및 문화적 연속성, 불연속성의 경험을 다루는 최근 다큐멘터리들은 영상 사회학적인 민족지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식민주의의 영향을 다양한 맥락으로 제시하는 영화들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정치, 사회적 구조하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새기는 방법으로서 다큐멘터리를 활용하는 작품들이다. 반(反) 식민주의 다큐멘터리 (Nous, 2021)는 서유럽 사회 안에서 인종주의적 권력의 역학관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1960년대 유럽으로 이주한 세네갈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여성 감독 알리스 디옵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프랑스 시민의 지위에 대해 탐.. 2022. 12. 11.
예술의 힘을 되찾기 위한 몇 가지 사유 인접한 다른 도시에서 인천까지, 한동안 매일 아침을 바쁘게 오가며 인천1호선 역사 내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전광판에 나오는 도시 홍보 영상을 자주 보았다. 역동적인 화면을 연출한 영상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인천은 ‘최초’의 무언가가 넘쳐흐르는 도시이며, 그 슬로건으로 ‘모든 길은 인천에서 시작되었음’을 제시한다. 사람과 사물이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는 모든 것이 들어오는 동시에 어디론가 다시 나가는 도시인 인천은 외부인이 바라보기에 언제나 흘러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인천은 스스로 만든 경로를 거쳐 나가고 마침내 ‘다시 돌아오는’ 곳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었다. 이러한 열망을 품은 도시에서, 한국 이민사 ‘최초’로 공식 기록된 1902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 1세.. 2022. 12. 11.
장소의 기억: 2022 부산비엔날레에서 본 디아스포라 인구와 물자의 이동이 용이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지역, 특히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일들이 한데 어울려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반도는 근대로 접어들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세계를 받아들이고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최초의 개항장이 된 부산은 일제강점기, 근대화,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떠나 보내며 시간의 축적과 함께 디아스포라의 범위와 해석을 확장해왔다. 물리적 이동으로부터 시작되는 디아스포라는 장소를 통해 사람들과 연계하고 상황들을 마주한다. 2022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이 겪어 온 역사적 장소에 기반에 두고 이주, 노동과 여성, 도시 생태계, 기술.. 2022. 12. 11.
지역으로의 일시적 개입 20세기 후반 이후의 유례없는 세계적 팬데믹의 발생은 지금까지 당연하다 여긴 삶의 방식들을 바꾸어놓았다.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시절이 한때였듯, 모든 물리적인 이동에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지난 3년간의 고된 여정은 도리어 어떤 반작용으로써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대신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더욱 활성화되었고, 새로운 기술과 프로그램을 시도하며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장거리 이동의 제약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직장이 있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지역, 지역 공동체, 로컬리티 등에 관련한 연구와 토론의 장이 보다 활발하게 열렸고, 지역을 기존의 개념과는 다르게 접근하여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2022. 12. 11.
디아스포라의 고통받는 얼굴을 보라 얼굴, 벌거벗은 고통이 당신 앞에 닥쳐온다. 고통받는 얼굴은 주체의 ‘상처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에 호소하며 우리에게 응답할 것을 ‘명령’한다. 고통받는 얼굴의 도덕적 명령,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겠다는 독단적 자유에서 벗어나라는 명령. 그 명령에 응답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 기꺼이 상처받으려는 자와 상처를 두려워 하는 자.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에게 윤리적 주체란, 이 고통받는 얼굴 앞에서 자신도 함께 상처 입겠다며 손을 내미는 주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주체, 그리고 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주체이다. 자신의 ‘상처입을 가능성’을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그럼.. 2022. 9. 25.
표류에 기울이는 말 세월이 짙은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그 두터움을 섬세히 다룰 여러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섣불리 내릴 판단을 유예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며 계속해서 변모하는 디아스포라 역시 그렇다. 그중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개화기 하와이 이주를 시작으로 중국, 일본, 연해주 그리고 또다시 중앙아시아 등지로 향한 이들의 몸이 조선/한국이라는 경계를 갖고, 도착한 땅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낸 것을 일컫는다. 초기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다룬 미술이 이러한 표지를 지닌 작가가 이주한 장소를 관찰하며 낯선 일상을 그려내거나, 이를 통해 자기 고백적이고 역사화 된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2010년대 이후 작가들은 세대를 건넌 뒤 맞닿은 현재의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과정에 참여하.. 2022. 9. 25.
욕망 주도 기계 - '공장달리기 인천' 이후 돌아보는 신체의 기계성 미국 철학자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가 제시한 기계지향론적 존재론(machine-oriented ontology)에 의하면 우리가 '존재'라 칭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기계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들뢰즈/가타리의 머시니즘(machinism)이 놓여있다. 이것은 작동하는 모든 것이 기계(machine)라는 주장인데, 생명을 가지는 것들을 포함한다. 보다 일반적 의미에서의 기계, 우리가 평상시 기계라 부르는 바로 그 비생명체들의 작동 원리를 일컫는 메커니즘(mechanism)과는 구분하기 위해서 도입된 명칭이 바로 머시니즘이다. 이 이론은 입이나 항문이 어째서 기계인지를 예로 드는데, 어떤 유기적 흐름에 개입하여 그것을 절단하거나 채취하는 것이 곧 기계라는 정의가 따른다. 이 주장에서 반복적으로.. 2022. 7. 31.
실제보다 리얼한 : 다르덴의 영화 속 이민자의 형상들, 변화들 영화에서 타자를 재현하는 방식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타자를 대상화된 시선으로 재단하진 않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재현해야 옳은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타자 재현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예전만큼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타자가 올바르게 재현되어서가 아니라, 타자의 개념과 위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자는 그저 타자의 얼굴을 한 자아로 흡수되거나, 집단화된 비인간이 되었다. 어떤 경우 타자는 두드러지게 좋은 얼굴로 재현된다. 의 자인은 실제 난민 소년을 캐스팅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또래 배우로서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지닌다. 에서 안티고네의 사연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그의 몽타주가 복제되고 상품화되는 현상은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좋은 얼굴을 뒷받침.. 2022. 7. 31.
미술에서의 디아스포라 :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작가와 작업 중심으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디아스포라’ 담론은 대체 거대한 의미와 개념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 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으로서의 디아스포라를 살펴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삶과는 무관한 거대담론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치열한 고군분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각문법을 다루며 광범위한 리서치와 다학제간 연구, 다양한 공동체와 교류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1980~)은 한국 제주도 출생으로 덴마크에 입양된 이후 덴마크 왕립예술학교, UCLA 에서 수학했으며, 코펜하겐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 (아트선재센터/서울), 제인 진 카이젠.. 2022. 7. 31.
인천문화예술40년사, 관행적 기념 편찬과 실천적 지역 기록화 사이에서 코로나19 여파로 문화예술 전반에서 계획 수정과 활동 정체가 반복된 지난 1년간 인천 미술계 이슈는 크고 무거웠다. 우선 2025년 건립 예정인 인천시립미술관이 소장품정책연구용역을 마쳤고, 미술관이 들어설 뮤지엄파크의 국제설계공모도 진행 중이다. 또한 2021년 “매머드급 예술시장이면서 비엔날레”를 표방하는 인천아시아아트쇼가 개최되었고, 올해는 인천국제아트쇼(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인천아트페스타(인천미술협회)와 함께 두 번째 행사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인천시립미술관 건립과 인천아시아아트쇼 개최는 문화 균형 발전 실현을 위한 도시재생과 예술성을 겸비한 국제 아트페어의 인천 정착에 각각 목적과 기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취지와 목표 구현을 위한 주제와 방법론을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2022.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