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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5

문화적 불연속성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의 전략 이주와 이산의 경험이 인간 정체성을 구축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현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의제들 중 하나와 연결된다. 초국적인 세계 체제하에서 이주 및 문화적 연속성, 불연속성의 경험을 다루는 최근 다큐멘터리들은 영상 사회학적인 민족지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식민주의의 영향을 다양한 맥락으로 제시하는 영화들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재의 정치, 사회적 구조하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새기는 방법으로서 다큐멘터리를 활용하는 작품들이다. 반(反) 식민주의 다큐멘터리 (Nous, 2021)는 서유럽 사회 안에서 인종주의적 권력의 역학관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1960년대 유럽으로 이주한 세네갈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여성 감독 알리스 디옵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프랑스 시민의 지위에 대해 탐.. 2022. 12. 11.
디아스포라의 고통받는 얼굴을 보라 얼굴, 벌거벗은 고통이 당신 앞에 닥쳐온다. 고통받는 얼굴은 주체의 ‘상처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에 호소하며 우리에게 응답할 것을 ‘명령’한다. 고통받는 얼굴의 도덕적 명령,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겠다는 독단적 자유에서 벗어나라는 명령. 그 명령에 응답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 기꺼이 상처받으려는 자와 상처를 두려워 하는 자.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에게 윤리적 주체란, 이 고통받는 얼굴 앞에서 자신도 함께 상처 입겠다며 손을 내미는 주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주체, 그리고 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는 주체이다. 자신의 ‘상처입을 가능성’을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그럼.. 2022. 9. 25.
실제보다 리얼한 : 다르덴의 영화 속 이민자의 형상들, 변화들 영화에서 타자를 재현하는 방식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타자를 대상화된 시선으로 재단하진 않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재현해야 옳은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타자 재현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가 예전만큼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타자가 올바르게 재현되어서가 아니라, 타자의 개념과 위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자는 그저 타자의 얼굴을 한 자아로 흡수되거나, 집단화된 비인간이 되었다. 어떤 경우 타자는 두드러지게 좋은 얼굴로 재현된다. 의 자인은 실제 난민 소년을 캐스팅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또래 배우로서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지닌다. 에서 안티고네의 사연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그의 몽타주가 복제되고 상품화되는 현상은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이 좋은 얼굴을 뒷받침.. 2022. 7. 31.
유전자에 새겨진 뿌리의 냄새, <파친코>와 <미나리>가 지워진 이민의 역사를 되살리는 방식 바야흐로 장벽이 낮아지고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2020)는 93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윤여정 배우)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 등을 만든 플랜B가 제작한 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주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Lee Isaac Chun)의 자전적 사연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린 이민자들의 삶이 투영된 수작이다. 북미에서는 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어 결국엔 아카데미의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북미에서는 80퍼센트 이상 한국어를 사용하는 가 외국영화인지 자국영화인지를 두고 작은 논쟁이 일었다. 제작, 배급 기준으로 한다면 는 미.. 2022. 5. 29.
예술가의 자격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니깐?” 대학 시절, 국어교육을 전공하던 나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영화과 복수 전공을 시작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일 거라던 나의 순진한 믿음은 영화제작 수업을 들으며 와장창 깨졌다. 수업은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 단계까지 각자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교수와 학우들의 합평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말이 좋아 합평이었지 사실 교수의 입맛대로 영화를 바꾸는 수업이었다. 한 친구는 자신이 어릴 적 성폭력을 당했던 일을 극복하고 싶다며 시나리오를 써왔는데, 교수는 성폭행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한다며 친구를 닦달했다. 급기야 교수는 남학우들을 한 명 한 명 지목하며, 그 장면이 보고 싶지 않냐고 캐묻기까지.. 202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