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시공간7

처음은 늘 그러하다. 처음은 늘 그러하다 ; 쌓아두기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료들은 모서리가 구겨지고 색이 바라고 심지어는 손실된다. 2020년, 임시공간 자료실에 켜켜이 쌓아둔 인천 미술 자료들을 모두 꺼내어 아카이빙을 시도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아카이빙’이란 쌓아두기만 반복하는 것이 아닌 분류체계를 갖고 선별하여 공공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익숙치 않았던 작업은 느리고 고되었다. 인천에는 시립미술관이 없고 공공이나 중앙기관에서 공개하는 아카이브 자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어떤 체계의 레퍼런스를 얻기도 부족했으며 지역의 아카이브를 방문해도 자료의 양은 방대하나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저장소는 없었다. 먼지 쌓인 자료들처럼 지역의 아카이빙은 그랬다. 흐릿하고 불분명했다. 보존하기 : 이미지 아카.. 2021. 9. 26.
쇼윈도우를 밝히는 세 가지 압력, “삼중점”의 무대 인천 송도 신도시에 24시간 열리는 전시장이 한시적으로 들어섰다. “삼중점 (Triple point)”의 전시장은 신축건물의 빈 상가 자리에, 엄밀히 말하면 용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장소를 잠시 점거한 화이트큐브이다. 전시를 찾은 사람들은 삼면의 쇼윈도우를 따라 남은 하나의 흰벽을 축으로 진자 운동을 하듯 관람하게 된다. 도심 속 쇼윈도우를 향해 회전하며 행진하는 조용한 의례가 펼쳐지는 시간, 몇 개의 전시된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압력이 관람객의 응시를 붙잡는 이 곳은 ‘삼중점(Triple point)’이다. ‘삼중점(Triple point)’이란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의 세가지 상태가 균형을 유지하여 공존하는 특정한 온도와 압력의 지점을 말하는 화학용어이다. 이번 전시는 국동완, 민경, 이민하 세 .. 2021. 6. 27.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참 어려운 시기였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바싹 힘을 낼라치면 코로나 19는 모두의 주어진 상황을 정지시켰다. 임시공간에도 그것이 비켜가지는 않았다. 2020년 인천리빙디자인페어(주최 디자인하우스, 인천관광공사/주관 월간 , 월간 )가 송도 컨벤시아에서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진행 예정이었다. 임시공간은 이 페어의 부스 참여에 초대받았다. 각 부스에서는 기성품의 리빙 용품들과 가구들이 판매될 예정이었고,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리빙을 시각예술 안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부스를 꾸릴 예정이었다. 어느 기획이든 그렇겠지만 단 4일을 위해 부스 공간 구성 디자인도 의뢰하는 등 물심양면 몇 곱절 애를 쓰며 ‘아티스트 룸’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페어 시작 하루 전날, 그러니까 작품 설.. 2021. 2. 28.
조용히 움켜쥐는 힘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같은 이름을 받는다. 평평하지 않은 이분법의 세계에서 같은 단어로 불리는 사람들. 그 중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언어로 시간을 소화해 그 풍경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 기울어진 세계의 뾰족한 성을 버리고 둥근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이름을 버린 민경이 성을 떼어낸 민경의 전시를 찾았다. 버려야만 오롯해지는 이름에 대한 애정으로. 눅눅하고 화려한 인천의 거리를 지나 도착한 임시공간,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유리창 너머로 회색 거리를 응시하는 붉은 사진들이다. 표면이 깎여 흘러내리는 붉은 흙의 시간. 깎여나간 토양의 거칠고 불안한 단면은 햇살의 고요한 부드러움과 함께 붙잡혀 평평히 인쇄되어있다. 저항하지 못한 채 쫓겨나듯 옮겨지는 것들을 그러안는 시선 한 줌도 햇살처럼 또 흙처럼 섞였으리.. 2021. 2. 7.
형상·형상(Form·Form) 전시의 주제이자 전시명 은 현실 너머 하나의 이상적 개념인 ‘idea’와 외견, 외형을 뜻하는 현실태의 ‘형상’(形象/形像)이 결합하어 마치 강조하기 위해 반복되는 ‘진짜 진짜’ 와 같은 부사처럼 붙여졌다. 전통적으로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개념이 이어져 와 칸트에 와서는 질료(Materia)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형상은, 직접적인 지각으로 떠오르는 ‘원형’의 개념 그 사이를 횡단 하며 수많은 사유의 가능성을 조종한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부터 참여 작가 박지애, 이병찬, 조성현은 ‘형상’이 작품으로 이루어지거나 접근해 가는 과정의 재현 가능성에 주목하며, 결과지어지는 형상의 개념을 탐구하였다. 결과적으로 ―위 개념에 의하면― 이들의 형상에 대한 탐구는 재현 의지로 이어지지만 ‘원형’을 지시.. 2021. 1. 17.
예술가의 자격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니깐?” 대학 시절, 국어교육을 전공하던 나는 영화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영화과 복수 전공을 시작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일 거라던 나의 순진한 믿음은 영화제작 수업을 들으며 와장창 깨졌다. 수업은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 단계까지 각자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교수와 학우들의 합평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말이 좋아 합평이었지 사실 교수의 입맛대로 영화를 바꾸는 수업이었다. 한 친구는 자신이 어릴 적 성폭력을 당했던 일을 극복하고 싶다며 시나리오를 써왔는데, 교수는 성폭행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한다며 친구를 닦달했다. 급기야 교수는 남학우들을 한 명 한 명 지목하며, 그 장면이 보고 싶지 않냐고 캐묻기까지.. 2020. 12. 27.
Twilight Zone - 중간지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김민성, 김수호, 서인혜, 최지이, 허찬미)들은 그동안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몸을 담아왔다. 부산, 구미, 대구, 서울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그들에게는 특별한 교차 지점이 없었다. 2019년,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대구광역시 가창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시간과 작업을 공유하였다. 공통의 장소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신체적 조건을 같이 맞춰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함께 보낸 장소는 어둠이 깊고, 빛이 긴 공간이었다.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어스름한 시간에 모두가 깨어 있었다. 그들이 감각하고 인지한 어둠과 빛은 서로를 향해 투과하고, 경계를 허물어 스며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둘러싼 공기와 온도, 낮과 밤 등을 함께 지켜보며 이러한..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