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로 기억되고 있는 오영재의 그림은 지극히 시적이다. 그는 시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부산의 근대 화가이기도 하다. 본고는 파라다이스 연작을 완벽하게 구상하였던 오영재 화백의 창작활동을 아카이빙 해 온 필자 1 의 지난해 경험을 언급하며 현재 한국근대미술 연구흐름 속에서 지역미술 연구의 특성과 지역작가 연구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생애 중심의 작가 아카이빙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즉, 작가노트/약력/출품작/관련 참고문헌 목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작가의 생애와 작품연구에 기반한 세계사와 한국사, 한국미술사와 부산미술사를 포섭하는 입체적 연보작성의 가능성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자는 우선 “정보<자료<콘텐츠<아카이브”의 명확한 구분법부터 제안해야만 하였다. 미술정보란 미술작품 자체 정보이면서 동시에 미술에 관한 기록 자료 모두를 포함하고, 정보란 내용/관련 소식/자료를 통칭하며, 자료는 연구/조사의 바탕이 되는 재료이다. 이러한 정보지식을 콘텐츠화하여 필자는 후대에도 계속하여 보존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수집/관리하는 아카이빙 방법론을 정립하고 싶었다. 즉, 지역작가 아카이빙의 가치는 유통에 있는 것이 아닌, 매순간 새롭게 정리하며 자료를 갈무리하고 여러 관점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서 온전히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필자는 지난해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오영재 연구』에서 오영재 화백의 삶을 ‘글로벌(일본 유학시기)’과 ‘로컬(전남 화순, 경북 경주, 부산시기 등)’의 측면에서 근대미술 연구에서 주요한 부분인 시대적 특성의 안과 밖을 파악해보았다. 더불어 본 연구를 기점으로 그동안 수정·보완하지 못하고 답습해 온 부산미술사 아카이빙의 오류를 바로 잡고자 시도해 보았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우선 작가의 작품 활동을 아카이빙 하기 위해서 부산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개인소장가 등에 산재한 작품을 선별하여 시대별 변천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본 연구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본 작품은 2014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을 계기로 소재가 확인된 유화 192점(부산시립미술관 159점, 경남도립미술관 3점, 개인소장 30점)이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영재 화백의 화업은 아래와 같이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1] 1943~1960년 사실주의적 습작 과정의 제작
[2] 1961~1980년 자유로운 마음의 표현과 정신적 도약을 위한 시기
(구상화에 전념하며, 동시에 추상화에 대한 도전)
[3] 1981~1988년 추상작품의 주된 제작에 겸해 구상화 제작
[4] 1989~1999년 말년의 파라다이스 연작(일관된 추상화 생성)
“오영재 화백은 1940년대부터 사실주의 계열의 그림을 그려오다 사물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그려내고자 시도하였으며, 1960~70년대에는 조형적 실험에 기반하여 구상화 작업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서사에 기반하여 이전의 조형적 실험을 넘어서서 색채와 패턴을 반복적으로 전개하였다. 말년의 오영재 화백은 비로소 입체적인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는 “대상의 면을 분할하여 대상이 지니는 깊이와 넓이, 그리고 힘과 무게를 조명함으로써 그것이 자아내는 감동을 그림으로 구성”하였다. 그는 리듬에 기반한 반복의 정동을 조형적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오영재 화백은 평생에 걸쳐 사실에서 구상으로, 그리고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정신의 초월성을 추구했으며, 화가로서 짊어졌던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그림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오영재의 작품에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그에게 모던함을 강조할 수도 있겠지만, 본고는 오히려 새로운 지각방식을 정립한 그만의 표현방식과 독창적인 조형어법을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추상화를 통해 함축적이면서도 참신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완성하였고, 살아서 자신만의 낙원에 당도하게 된 진정한 예술가였다.” 2
이 외에도 필자는 작가를 기억하고 기록해두었던 관련 구술채록 및 인터뷰·도록·연구논문·칼럼·기사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아카이브적 관점에서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보았다. 특히 『오영재 연구』를 발표할 때에는 종이가 아닌 PDF 파일로 만들어 웹으로 배포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모두에게 평등한 자료를 만들고 싶었던 필자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였다. 특히 연구서에 실린 참고자료 리스트를 클릭하면 바로 신문기사 원문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수집했던 참고문헌을 정리하며 목록화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필요한 경우 미술관의 협조를 얻어 작품이미지를 직접 제시하였다([참고] 그림 1~5).
본 연구에서 기대했던 직접적인 부분은 부산지역에서 독립연구자가 한 작가의 화업을 총체적으로 아카이빙하여 생애와 활동, 그리고 당대 및 후대의 평가를 입체적으로 제시하였기에 기존 선행 연구의 단편적인 오류를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연구를 진행하며 주변 인물들 사이의 관계사를 함께 파악하여 작가의 활동범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방법론은 현재 한국, 부산, 동아시아 미술사 연보를 함께 제작하며 객관적인 지역미술의 위치와 지역미술가가 한국 동시대미술에서의 영향력을 점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여러 시도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연구가 진행되길 바란다. [ ]
조은비 (독립기획자)
작품 정보
그림1 : 오영재, <영도>, 1961, 캔버스에 유채, 40x72.5cm
그림2 : 오영재, <풍경>, 1977, 캔버스에 유채, 41x53cm
그림3 : 오영재, <파라다이스>, 1984, 캔버스에 유채, 52.4x45.8cm
그림4 : 오영재, <파라다이스>, 1992, 캔버스에 유채, 53x53cm
그림5 : 오영재, <파라다이스>, 1999, 캔버스에 유채, 40x42cm
*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받았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 연구자 겸 연주자인 조은비는 대학에서 피아노/미학/영화를 공부하였으며, 현재 부산에서 예술비평연구소 슈필라움(SPIELRAUM)을 운영하며 '관객'과 '작가', 둘 사이에서 이미지를 매개로 하는 '능동적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와 강연, 크리틱에 참여하였으며 한국미술사 속 단절된 지역미술사 연구에 공백을 메우고자 『나혜석 다시 쓰기』(2021), 『오영재 연구』(2022), 『부산근대사진연구: 錨泊地』(2023 출간예정) 등의 책을 펴냈다. [본문으로]
- 졸고, 「완상: 낙원으로 가는 길」, 『오영재 연구』, Luminosity, 2022, pp.76-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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