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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을 향한 예술의 투쟁: 인천의 문화예술과 문화영향평가

by 동무비평 삼사 2021. 1. 31.

예술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잠재력은 국가에게는 매우 매혹적인 힘이다. 때때로 국가는 예술을 자신들의 치적을 장식할 도구로 쓰고, 예술이 이끌어 내는 체제 저항의 힘은 은밀하게 제압하고자 하였다. 2016년 한국에서는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발각됨으로써 정부가 문화예술을 길들이려고 하였던 정황이 드러났다. 여기에 저항하고자 문화예술계는 광장에 블랙 텐트를 세우고 예술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블랙리스트 작성과 검열에 관여한 관료에 대한 처벌과 사건에 대한 리포트 작성을 촉구하였다. 이 같은 압박은 촛불 혁명과 어우러져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동력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못한 채 고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조성을 중시하는 문화예술 영역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유의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은, 자기 논리와 조직화를 반복하는 법과 행정체계에 특별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마치 체계 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분명한 한계가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지금 문화예술인들은 예술활동 방해죄를 포함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입법하기를 서두름으로써 이 문제를 돌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법을 매개로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종의 규범들이 변화될 수 있을까.

 

한편에서는 문화예술이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예술은 언제나 그 자체 순수한 영역에 머물러야 하며 정치와 연계되면 특정한 정파의 선동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도 어불성설이고, 애초에 선후가 뒤바뀌어 정치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는 자들이 문화예술인의 외양을 빌어서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의혹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예술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특정한 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조치는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이란 어떠한 오염도 허락하지 않는 순수성을 간직해야 하며, 이는 문화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태도와도 일치한다. 주어진 역할의 교차란 허용되지 않는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예술인은 예술을 하며, 시민은 일상을 산다.

 

이 같은 관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이해를 축소시킨다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람으로 불렸다. 미국 연방대법관이자 헌법 이론가인 브라이어는 이 점에 덧붙여, 민주적인 정부란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시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도록 하는 정부를 뜻한다고 지적하면서 헌법을 통한 참여적 민주주의의 실현과 국가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자유에 대해 역설하였다. 그가 강조하는 자유란 국가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참여와 역량을 배양할 전제가 되는 자유이며, 이를 역동적 자유(active liberty)라고 이름하고 있다.

 

브라이어의 논의를 적용해본다면, 역동적 자유로써의 예술의 자유란 국가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에 관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 된다. 이는 예술의 자유를 만들어낼 자유’, 나아가서 예술의 자유를 예술할 자유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그와 같은 논의 속에서 문화예술인의 복지, 교육, 근로 등의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 권리보장도 국가에 의한 시혜의 최대보장이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참여의 자유 속에서 스스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문화예술에 관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자유가 법령에 구체적인 문언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인천의 경우, 일찍이 박남춘 시장이 선거공약으로 문화기본조례와 문화예술인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조례를 제정하기로 약속한 바 있으나 현재 제정되지 않고 있으며, 시의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도 문화예술인들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할 실질적인 방안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은 인천문화재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천광역시 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12조 제1항은 문화재단의 임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임원은 시장인 이사장을 비롯하여 대표이사를 포함한 15명 이내의 이사로 구성하되, 이사는 시 관계공무원 1인 이내,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1인 이내, 문화예술과 지역가치에 관한 식견과 덕망이 있는 각계 인사로 하고, 감사 2인을 둔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인천문화재단 정관에 보면 당연직 이사는 시 문화예술 담당국장, 시의회 문화예술 관련 상임위원장, 시 교육청 문화예술 담당 국장으로 하고 있고, 선임직 이사는 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에 의해 이사장이 선임하도록 되어 있으며, 대표이사는 대표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시장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인천문화예술인들이 추천하는 인사가 임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표이사를 공개모집한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추천위원회의 구성, 추천명단 및 결정사유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추천위원회와 시장에 의해서 대표이사가 결정되고 만다. 이와 같은 인사는 재단을 시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반영하는 집단으로 전락시키고, 지역 문화예술계를 압박하는 또 다른 권력으로 작용하게 만든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각에서는 문화영향평가 제도에 주목하기도 한다. 문화기본법 제5조 제4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때에 문화적 관점에서 국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여 문화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문화영향평가를 명문의 규정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문화예술인의 문화영향평가에의 참여가 문화예술에 대한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자유와 권리를 대리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화영향평가는 강제성이 없다. 따라서 조례에 문화영향평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의 문화예술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근거를 조문의 형태로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쉽지 않은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 통합된 입장을 형성한다는 이유로 피아를 구분하고 문화예술집단의 순수성을 고집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역동적 자유를 스스로 놓쳐버리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술인만이 아니라 더 많은 비예술인과 문화관계자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을 향한 예술의 투쟁이 그려내는 청사진은 예술에 대한 감상적 소모에 그치지 않고 그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 즉 문화로 침투되는 감성적 변화의 가능성과 우리 삶의 유연한 변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

 

허문

 

* 본 칼럼은 2018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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