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던 우리의 발걸음이 결국은 뜨거운 안녕을 고하지 못하고 지루하게도 올해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코로나를 처음 만나 약간은 당황했지만 사스나 메르스처럼 곧 쉽게 이별 할 것처럼 무심한 척 하려던 그때도 코끝이 시렸던 겨울이었는데 또 다시 겨울을 맞는다.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거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기대와 전혀 다르거나 혹은 예상과 달리 우연이라고 하기엔 필연처럼 “그래, 바로 이것이 예술이지” 뜨겁게 열광할 만한 결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에 있어 정말 뜨겁게 열광해야했으나 짜게 식어버린 정부 계획 발표는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일 것이다.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은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 제 6조에 근거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 문화진흥계획이다. 1차 기본계획의 실행기간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로 그간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2차 기본계획(2020~2024)을 수립하게 된다. 2020년 올해가 2차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의 첫 시행 년도인 셈이다. 문체부는 2020년 2월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포용과 혁신의 지역문화를 꽃피운다>라는 기조와 함께 ▲ 시민의 참여로 문화자치 생태계 구축, ▲ 포용과 소통으로 생활기반 문화환경 조성, ▲ 지역의 개성 있는 문화 발굴·활용, ▲ 문화적 가치로 지역의 혁신과 발전이라는 4개의 전략과 15개의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전형적인 범국가적 문화예술분야 정책이 공표되고 수많은 하위기관들은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시행 첫 해의 그 어떤 성과들을 차례로 내놓기 시작해야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테다. 그런데 매우 비수학적이며 비논리적이게도 2020년부터 실행되어야할 것 같은 이 기본계획에 따라 우리나라의 228개의 시군구는 지역문화진흥시행계획을 당해 년도 하반기에 수립하여 해를 넘기기 전 문체부에 제출해야한다. 사전 작업으로 17개 시도는 권역별로 지역문화진흥시행계획을 세우게 되고 군, 구는 지자체별로 수립, 작성한 내용을 광역단위에 제출하는 것이다. 중앙 정부와 광역으로, 광역에서 다시 기초자치단체로 전형적인 TOP DOWN 형식의 시행계획인 것이다. 여기에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제2차 지역문화진흥시행기간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인데, 그렇다면 시행 첫 해는 그냥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는 기간일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인가? 또한 지역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책적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이 시스템과 구조 자체를 잘 모르고 있고, 매우 긴박하게 계획 수립이 진행된다는 점은 단지 정부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안이니 그 계획에 무조건 이해하고 수긍해야하는 것인가?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를 이야기하면서 아직도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이 중앙 정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광역 문화재단을 통해 지역으로 내려오는 방식에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하는 것인가?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정책과 주관의 지역문화진흥시행계획 권역별 토론회에 참석했다. 수도권 그러니까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제주 5군데의 광역 각 담당자(시 소속 문화 관련 담당사업부서 팀장)가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과 토론을 진행하는 형태였다. 발표되는 자료들은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아래 수립된 시행계획이므로 예상대로 비슷한 기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통점과 주요 이슈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지역문화재정 확충과 지역문화재정 편성의 민주성과 자율성 제고, 지역문화진흥법 제21조와 22조에 의거한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 지역문화재정의 확보와 다각화의 필요성, 지역 문화인력 양성과 활용 방안, 지역 문화자산을 활용한 지역 재색 도모 방안 등으로 나열 할 수 있다. 각각의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는 문화분권과 자치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한 각 지역의 의지를 표방하는 것으로도 이해하였다. 또 지역의 역량을 믿고 정부와 광역 차원에서 서포트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연착륙시킬 수 있도록 지역의 역량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모색되어야 할 것임도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여졌다.
각각 추구하는 바와 고민의 지점은 대동소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질의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역문화진흥을 이야기하면서 왜 상향식(Bottom up) 형태가 아닌 하향식(Top down) 형태로 수립이 되는 것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의 대답은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결국 관련 법률상 정부차원에서의 계획이 수립되어지고 지역은 그 계획에 근거하여 시행계획을 세워야하며, 지역의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다. 또 1차 때에는 이러한 토론회와 포럼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번 2차 때는 기본계획 연구 시작 전 연구팀이 지역을 한 바퀴 돌았다.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는 것이었다. 이해하는 당사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 그녀의 말은 모든 지역의 문화 역량과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문화역량의 가상의 기준을 정해서 순위를 매기고 모두 기대하는 만큼 따라올 수 없다면 자율성을 줄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문화의 다양성을 주구장창 이야기하면서 모든 지역의 문화 평균 잣대를 통한 요구는 잘 못 된 것이라 판단된다. 한 사람의 대답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문체부가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이리라 감안해본다면 비약일지 모르나 가상의 잣대로 모든 지역은 어느 정도 지역문화진흥의 수준이 되어야한다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많은 지역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모색되어야 할 사안들과 방안들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효율적 지역문화정책제도의 정착을 위해 지역중심 정책과 사업평가 체계 도입과 환류체계를 구성해야할 것이다. 문화예술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 결과로 도출되는 양적 지표는 질적 지표로, 결과 중심의 지표는 과정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지역문화사업의 이력관리제를 실시하여 각 지역의 특성과 고유한 지역문화에 대한 성과들이 체계화되어야 할 것이며, 지역문화 고유의 평가체계가 개발되고 단기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사업이 계획되어지고 그 결과들로 실적들이 주도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하향식 전달체계로 이루어지는 지역문화계획들은 기초에서 광역, 광역에서 중앙으로 상향식 전달체계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지역의 정책, 행정기관, 문화예술기관, 민관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지역문화 거버넌스가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자치 역량이 이루어져 체계적인 상향식 전달체계로 구조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 정책의 주체가 되는 기관들은 구체화된 역할 분담을 통해 협력 구조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중앙은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을 통한 정책 비전을 수립하고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해야할 것이며 지자체는 지역의 특성과 여건을 반영하는 시행계획을 통해 정책을 구성하고 그에 따른 사업을 추진하며, 민간 지원기관들은 행정주체와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지원하는 네크워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구조 간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지역문화 정책과 사업들은 더욱 정교하며 전략적으로 구축될 것이라 믿는다.
지역문화진흥 정책과 제도의 정착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지역문화의 균형적인 발전일 것이다. 모든 도시들의 경제와 문화적 여건의 간극은 매우 크다. 경제와 문화의 상관관계를 고려했을 때 결국 지역문화진흥이란 지역발전이라는 대 전제하에서 이뤄지고 해석 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각 지역의 현실을 반영해보면 경제력이나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 한 지역은 지역문화진흥이라는 목표를 이루어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광역 시 차원에서의 균형적 발전의 목표를 세울 필요가 절실하다. 단기적 성과주의로 나타나는 평가를 통해 성과가 높은 지역에 더 지원해주는 방식에서 지역문화진흥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더욱 지원이 필요한 지역에 지원하는 방식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아무리 정부차원에서 각 지역들의 여건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세밀하고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광역 차원에서의 맞춤 형태의 지원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효율적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광역단위의 행정과 정책, 제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광역차원에서 작성된 이번 2차 지역문화진흥시행계획을 보면 각 지역에 기초문화재단의 설립을 목표로 하고 계획을 수립한 곳이 꽤나 많이 보인다.
지역문화진흥을 위해 작은 단위의 세밀한 역할들이 필요해지고 그 기능들을 수행하는 미션을 기초문화재단들이 완료해주길 기대하고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바가 클 테다. 그러나 작은 시, 군 단위까지 문화재단들이 모두 만들어지는 데는 많은 한계와 어려움들이 존재할 것이다. 수많은 지자체들이 설립 타당성 용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조례를 재정하고 예산을 확정하고 동의를 얻고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함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작은 도시 하나하나에 문화재단들이 설립되기 힘들다는 가정 하에 정부와 광역차원에서의 통합적인 중간지원조직들이 꾸려져야 할 것이라 판단된다. 중간지원조직들이 구성되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각각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다면 지역문화진흥이라는 미션의 효율적 완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며 우리는 지역문화영역이 단순히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예술중심이 아닌 우리 삶 전체로서 일상의 문화와 지역 사회의 가치재로 등장해야하며, 문화비전 2030과 제2차 지역문화진흥계획에서도 언급되듯 문화를 통한 지역사회의 이슈와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 기대하며 미미하지만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지역문화진흥을 통해 사회적 문화안정망을 구축해 나가는 일들이 이제는 우리 삶 전반에 녹아있는 문화영역의 당연한 역할로 인식되고 지역사회의 가치재로 존중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변화되며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이번 겨울은 조금 더 단단히 마스크를 조여 쓰고, 모든 욕망에 절제와 인내를 하며 견디어낼 수밖에 없겠으나 2021년 봄, 제 2차 지역문화진흥 2차 년도에는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통해 지역문화가 꽃피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지역문화진흥이 시작되는 날들이기를 희망해본다. [ ]
로렌킴
* 본 칼럼은 2020년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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