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옹노에서 열린 전시 <개항장 재구성>은 인하대 대학(원)생과 대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청년들의 작업이었다. 필자 포함, 모두 전시를 준비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전시를 관람하기만 했지, 전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터였다. 그랬기에 이번 전시는 모험과도 같았다.
사실 이번 전시는 평소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나는 인하대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지금은 문화경영 전공 석사과정에서 공부 중인데,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도시재생과 지역문화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대다수는 인천을 잘 모른다. 서울에는 자주 놀러 가고 관심을 두지만, 정작 학교가 있는 인천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인천의 역사문화자원이 밀집된 개항장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과제로 인천아트플랫폼 한번 다녀오고, 짜장면 먹으러 차이나타운 가보고... 지역문화와 도시재생에 관심있다는 대학생들조차 개항장 일대를 경험하는 방식이, 하루 관광하러 오는 방문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들이 꼭 동인천에 관해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생이 가까운 미래에 인천의 문화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그래서 좀더 많은 대학(원)생들에게 인천 원도심에서 활동하고 경험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인천에서 활동해보면 그동안 몰랐던, 동인천을 비롯한 원도심의 가치도 발견하고, 졸업 후에는 ‘무조건 서울로 가야지’라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다. 그러던 참에, 2019년 4월에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원도심주민공모사업 공고를 보게 됐다. 평소 개항장 일대가 너무 관광지로만 부각되다보니 정작 그곳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주민들은 소외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두 가지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해 냉큼 지원했다. 그렇게 10명의 20대 청년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개항장을 관광지가 아닌 주민의 삶터로 이야기하는 <개항장 재구성>을 시작하게 됐다.
세심한 배려의 필요성
의욕은 앞섰지만 팀원 모두 전시기획이 처음이다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항장 재구성>은 개항장 주민 30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개항장에 얽힌 기억과 추억, 생각 등을 전시로 구성하는 것이 주 내용이었는데, 인터뷰부터 난관이었다. 30명에 달하는 주민에게 인터뷰 허락을 받는 것도, 한 분 한 분 찾아가 인터뷰하고, 녹취를 글로 풀며 윤문하고, 내용을 확인받는 과정 전반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품이 드는 활동이었던 것이다. 사업계획서에 무심코 써낸 3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 뒤늦게 많이 후회했다.
인터뷰를 처음 진행하다 보니 과정 중에 몇몇 주민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인터뷰이에게 전시 취지에 관해 설명드리고 “인터뷰 내용은 녹취 후 전시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막상 인터뷰 내용을 확인받을 때에는 “내용이 필터링이 안 됐다”, “민감한 내용을 그대로 드러냈다.”, “실명이 안 나갔으면 좋겠다.”, “전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등의 피드백을 받았다. 결국 어떤 분은 마지막에 참여를 거부하셨고, 녹음된 인터뷰 내용을 몇 번이나 듣고, 글로 쓰며 윤문했던 수고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해보니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었다. 인터뷰 대상이 ‘주민’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면, 민감할 수도 있는 내용을 더 필터링했었어야 했다. 전시 포스터에 주민들의 실명이 작은 글씨로 디자인되어 들어갔는데, 사전에 허락 없이 포스터를 인쇄한 것도 문제였다. 실명 공개를 원치 않는 분이 있을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30명을 인터뷰한다는 건, 30명의 주민을 만나는 것이고, 이 기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데 역지사지의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주민과 함께 하는 일은, 그들이 한 동네에, 한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을 몸소 알게 된 것이다.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난관 헤쳐나가기
30명의 인터뷰를 마쳤지만 난관은 계속됐다.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하는 전시 내용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시공할 것인지 벽에 부딪힌 것이다. 시공하는 과정을 모르고 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측할 수 없으니, 디자인 작업을 해도 이게 현실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시공업체가 있는지도 몰라서 무작정 구글링을 해봤다. 전시, 시공, 시공업체 등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정보라곤 박람회 시공업체 리스트뿐이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고경표 독립큐레이터에게 연락해 강연을 요청드렸다. 정말 감사하게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고 그렇게 전시 기획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시 시공에 필요한 비용을 알게 됐는데,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시공으로 잡은 예산은 150만 원이었는데, 이 돈으로는 전시 가벽도 세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우리의 딱한 사정을 들은 큐레이터님이 시공을 잘하는 작가가 있다며, 백인태 작가님을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작가님과 옹노 운영자인 이의중 대표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주민분이 이번 전시를 위해 물품을 빌려주셨다. 개항장과 관련된 그들의 추억, 기억이 담겨있는 물품을 흔쾌히 건네주신 것이다. 가보로 물려줄 만큼 소중히 여기는 액자부터 직접 제작한 작품까지 20여 종의 물품이 관람객과 만났다. 예산이 부족했던 탓에 전시장에서 사용되는 벽걸이 모니터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복숭아꽃에서 흔쾌히 빌려주기도 했다. 부족한 예산과 경험으로 전시를 오픈할 수 있었던 건 개항장 일대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주민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도움을 받기만 한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하면서, 한편으론 어색함도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도움을 받기도 어색했던 것이다. 이 어색함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10대 이후 지금까지 지역사회와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없었다.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동네에서 서로 돕고 도왔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참여했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시가 끝나고 돌이켜보니 젊은 청년들이 인천에서 활동해보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경험들이 꼭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바로 나타나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관계를 만들고, 그 경험이 축적되면 훗날 인천으로 리턴(return)하는 청년들이 증가하지 않을까. 이런 경험이야말로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 ]
김아영
전시: 개항장 재구성
기간: 2019.11.16 - 2019.11.29
기획: 인더로컬(김혜린 외)
장소: 옹노
참고: 2019년 원도심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
사진제공: 인더로컬
*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했으며, 사용 허가를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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