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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86

<실바니안 패밀리즘>에 관하여 은 ‘실바니안 패밀리’라는 인형에서 출발했다. 이 인형은 보송보송한 털과 앙증맞은 표정을 가진 동물 인형으로, 주로 4인 가족으로 구성된 인형 세트를 대표 상품으로 판매한다. 인형 외에도 집과 가전, 생활잡화 등 우리 실생활에서 사용할법한 많은 것들이 미니어처 크기로 재현-판매하고 있다. 구매자는 이 인형을 수집하고 플레이하며, 실바니안이 말하는 ‘자연, 가족,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며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리는’ 가상의 삶을 꾸린다. ‘실바니안 패밀리‘의 세계는 한없이 평화롭고 이상적인 사회다. 치마를 입은 동물이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고 부띠끄에서 쇼핑을 하거나, 바지를 입은 동물이 환자를 돌보고 피자 배달을 한다. 아기들은 젖병을 하나씩 물고 아기침대에서 잠이 든다. 이 작은 세계에는 아무런 사건.. 2020. 12. 20.
파라다이스시티: 무절제&절제 국공립미술관이나 대형 사립미술관 등이 거의 없는 인천에서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인천 시민들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을 이용하거나 근처를 가게 된 된다면 시간을 내어 방문해 볼 만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인천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시티의 예술 전시 공간인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아니지만 아트테인먼트(Art-Tainment)를 추구하는 파라다이스 시티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며, 전시장이다. 고급스러운 호텔의 구석구석에 국내외 거장의 예술 작품을 3,000여 점을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호텔이라는 장소적인 특성 때문에 예술적인 콘텐츠 외에도 함께 즐길 만한 요소도 꽤 매력적이다. 얼마 전 개관에는 기념전 (9. 19~ 11. 18.. 2020. 12. 20.
신기한 드나듦에 대하여: 언젠가 정착한 사람들 인천의 어느 동네를 달리고 있었다. 택시에는 일흔을 훌쩍 넘긴 큰아버지와 예순도 안 된 막냇동생과 그의 딸인 내가 타고 있었다. 목적지는 주안동 ‘현상 약국’. 큰아버지는 택시 기사에게 주안에 오래된 약국 두 개 중 하나가 문을 닫는다고 말을 걸면서 재개발 얘기를 꺼냈다. 큰아버지 고향은 파주 장단. 전쟁 때 도림동으로 피난 와 영등포에서 평생을 사시다 인천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그런 큰아버지가 타고난 인천사람마냥 주안동의 재개발에 대한 염려를 숨기지 않으셔서 의아했다. 자신 역시 이주민인 동네에서 개발이라는 변화를 걱정하며 택시 기사와의 몇 마디 대화로 애써 근심을 가라앉히려고 하는 마음은 큰아버지 개인 인생사를 생각하면 낯설었지만, 자주 이사를 다니는 도시 거주자로서는 익숙하기도 했다. 그 정감.. 2020. 12. 18.
김금자와 범진용, 모자의 ‘성북동’ 혼자서 하기 힘든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어떤 상태를 제거하는 것이 아닌, 그 상태로 정지시켜 고이 묶어두는 행위이다. 이것은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범진용 작가의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빌리면, 작가의 어머니는 ‘아마도 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집안 이곳저곳을 쓸고 닦으시며 바쁘시다.’ 그는 이런 어머니께 ‘그 흔한 영양제 대신 미술용품’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보시라고 말씀 드렸다. 작가는 그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전시장에서 위로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전시는 작가와 어머니의 ‘성북동’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는 것이 낯선 어머니는 어릴 적 누구나 경험해 본.. 2020. 12. 18.
기이한 뒤집기, 카니발레스크의 실천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작업해 왔으나 다 년간 발표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던 백인태가 개인전 《고라니》展(2019.10.10~31 갤러리 옹노)을 가졌다. 전시가 정조준하고 있는 문제는 자본화된 사회에서 존재가 처한 다면적 상황이다. 물화된 세계에서 부정되는 존재, 특히 인간 개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동시대 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다뤄지는 예술적 관심사이다. 다만 주목할 만 한 점은 부조리한 사회, 멸종 위기에 놓인 존재의 현실에 접근하는 백인태 작업의 인식과 태도가 지닌 특수성이다. 백인태 작업은 훼손된 인간의 이목구비나 정신 질환적 징후 없이, 심각하게 변형되거나 과도하게 축소된 인체의 제시 없이 뒤틀린 세계와 위태로운 존재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백인태 작업은 파블로 엘겔라가 『사회참여예술이란 무.. 2020. 12. 18.
회화적, 가변적, 더 정확하게 안상훈의 전시 는 이제까지 작가가 제작했던 모든 작업들 하나하나에 건네는 고마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인이 제작한 작업들을 돌아보고자 하는 전시 의도에 맞게 실제 캔버스 작품이 전시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이와 달리 작가는 전시장에서 현장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덕에 시적이고 사려 깊은 제목의 전시는 가변적이고 즉흥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다층의 레이어와 볼륨을 가진 점, 선, 면, 덩어리, 얼룩 등이 저마다의 속도와 흐름으로 전시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수분을 머금은 구름처럼 어느 순간 상태를 변화시키고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것 같은, 임계지점에 다다른 듯 포화되고 팽창과 수축이 유동하는 가변적 물질의 세계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추상의 이미지마저도 환영으로 읽으려고 하는 관람자적 충동으로 .. 2020.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