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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86

퍼포먼스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12월 겨울의 추위에 쫓겨 종종걸음을 치며 오랜만에 갤러리 옹노를 찾았다. 갤러리 옹노의 입구는 영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비밀의 승강장을 연상케 한다. 이미 몇 번 와본 적이 있음에도 여기 골목이었나 저기 골목이었나 자꾸만 멈칫거리게 된다. 골목을 꺾고 꺾어 전시장 입구에 도착했더니 애석하게도 굳게 닫혀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전시장에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운 와중에 포스터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 연결을 했고, 전해오는 한마디. “안 잠겨있으니 들어가시면 돼요.” 이렇게 나름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오래된 건축물 ‘갤러리 옹노’만의 매력 있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입구 오른편 깊게 들어간 좁은 통로 끝에 컴퓨터 한 대와 음향기기가 설치되어 있.. 2021. 2. 7.
조용히 움켜쥐는 힘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같은 이름을 받는다. 평평하지 않은 이분법의 세계에서 같은 단어로 불리는 사람들. 그 중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언어로 시간을 소화해 그 풍경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 기울어진 세계의 뾰족한 성을 버리고 둥근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이름을 버린 민경이 성을 떼어낸 민경의 전시를 찾았다. 버려야만 오롯해지는 이름에 대한 애정으로. 눅눅하고 화려한 인천의 거리를 지나 도착한 임시공간,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유리창 너머로 회색 거리를 응시하는 붉은 사진들이다. 표면이 깎여 흘러내리는 붉은 흙의 시간. 깎여나간 토양의 거칠고 불안한 단면은 햇살의 고요한 부드러움과 함께 붙잡혀 평평히 인쇄되어있다. 저항하지 못한 채 쫓겨나듯 옮겨지는 것들을 그러안는 시선 한 줌도 햇살처럼 또 흙처럼 섞였으리.. 2021. 2. 7.
순리를 지키는 공증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간 중국인 3,000만 명이 아사한다. 북한 총인구수보다 많은 수치다. 이는 마오쩌둥이 쓰촨성 농촌을 시찰하던 중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보고 화를 내며 던진 한마디의 말 ‘저 새는 해로운 새다’의 파장이었다. 이후 구성된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참새를 닥치는 대로 소탕하자 해충이 창궐하게 되어 생태계가 무너지게 되면서 농작물이 초토화되고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 것이다. 독일 3 제국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는 유대인을 비롯한 동성애자, 장애인 등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이 대량 학살된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마다 논란이 지속 중이지만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수만 350만여 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학살은 실로 다양한 방법으.. 2021. 2. 7.
낱낱의 언어, 각자의 공동체를 찾아서 ‘되다 만 듯한’ 인테리어가 유행인 시대다. 공사 중인 것 같은데 영업하고 있는 카페라고 해서 놀란 적도 많다. 이게 다 인스타 ‘갬성’이라니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찬 요즘, 빈 집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는 전시 소식을 듣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대학가 먹자골목에서 딱 한 뼘만 들어가면 나타나는 주택 2층, 전시장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감나무의 감이 무르익고 있는 가을 기운이 가득한 집, 아니 전시장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빨리 황폐화되는지,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사람이 산 지 제법 시간이 지나보이는 대학가 근처 평범한 주택은 잠시나마 작품들의 온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빈집을 주제로 미술활동을 하는 정미타 작.. 2021. 1. 31.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한 일상적이고 예술적인 제스처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경동 싸리재 길에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창고를 개조하거나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 갤러리, 문화공간이 늘어나면서 문화 관광지로 뜨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재생, 가치 재창조의 이름 아래 원도심이 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중‧동구에 쏠리는 관심이 대단하다. 마을이 점점 카페 거리로 변해가면서 사람이 몰리니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쉽게 소비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종이컵들이다. 플라스틱 컵들이 계단과 동네 곳곳에 버려지고 있는데, 사실 해양쓰레기로 바다 섬을 만들어내는 주범 역시 이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들이 대부분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일회용 쓰레기에 관심을 쏟던 차에 마침 관련 전시가 배다리 .. 2021. 1. 31.
당신에게 평화란 무엇입니까? 서울 서교동에서 인천 교동도를 중심으로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공간 ‘듬’을 운영하고 있는 윤대희가 기획하였고, 고등어, 김수환, 박주연, 범진용, 손승범, 윤대희가 작가로 참여하였다. 강화를 기반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기획하는 협동조합 청풍의 제안으로 이번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참여작가들은 교동도 리서치 투어를 진행하고 실향민의 자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사전 활동을 진행하였다. 교동도는 강화의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과의 거리가 2~3km에 불과한 남북 접경지다. 교동도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망향대가 있고 실향민이 터를 잡은 마을이자, 민간인 출입통제구역과 군사지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 2021. 1. 31.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가 지역을 만났다. 2019년 5월, 부평아트센터에서 진행한 전시의 지킴이와 도슨트로 일했다. 전시 지킴이는 전에도 해보았지만 도슨트로 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술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시가 진행되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재미있어졌다. 내 미술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거리 출신 ‘길냥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고양이 동영상이라면 거의 다 섭렵해 왔던 터였다, 마침 전시를 위해 열린 ‘나비날다 책방’ 팝업 스토어에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빠짐없이 찾아 읽으면서 전시 설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전시 지킴이를 하는 동안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5월 가정의 달에 진행된 전시다 보니 평일.. 2021. 1. 31.
사람과 디지털의 공감, 예술이 되다. 2019년 10월 11일부터 2020년 1월 31일까지 인천 중구 PARADISE ART SPACE에서 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전시의 타이틀을 보았을 때, 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랜덤 인터내셔널? 피지컬 알고리즘? 일단 ‘랜덤 인터내셔널’이란 아티스트 그룹명인 것은 알겠다. ‘피지컬 알고리즘’은 그 사전적 뜻부터 찾아보았다. 피지컬은 인체의/물체의/자연법칙상이란 뜻이고,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이라 한다. 너무나도 이과적인 단어들이다. 이 개념들이 현대미술을 만나 과연 어떤 작품으로 구현된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워 전시 설명을 미리 찾아 읽어보았다. "디지털 기술 발전을 넘어 디지털 환경 속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오늘날 포스트 디.. 2021. 1. 24.
고립으로부터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기계장치와 그것이 내뿜는 소리는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그 의미를 선뜻 알아챌 수 없는 라는 낯선 제목처럼. 용도가 분명치 않은 알루미늄 소재의 패널 두 장이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고, 각 패널에서는 기계음이 나온다. 모두 동일해 보이는 패널은 프레임이 같을 뿐, 자세히 보면 프레임 내부의 표면은 모두 다른 소재로 되어 있다. 슬레이트 지붕, 염색을 한 천, 철망 등의 소재로 되어 있고, 각각의 패널에서는 메트로놈 소리, 전파 망원경 소리, 시계의 초침 소리, 라디오 주파수 소리 등 각기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미세한 차이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작가의 설명이 없다면 이 작업의 출발이 된 참조점에 다가가기 쉽지 않다. 그는 ‘물리.. 2021. 1. 24.
염증, 재현, 날 것 신재은의 이번 전시는 공간의 특징을 파악하고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의지가 부각된 전시였다. 관객은 입구에 배치된 ‘침묵의 탑 Pink(2018)’의 미니어처를 관람하고 붉은 카펫을 지나 검은색 액체가 솟구치는 메인 작품 ‘Black Fountain(2019)’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층에서 관람한 작업은 다시 일층의 작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나의 무대처럼 연출했다. 연출 감각은 젊고 발랄했으며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과장되게 제시해왔던 작가의 기본 작업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전시였다. 2층의 핑크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파여진 작은 구멍에 귀를 기울이면, 반대편 벽에서 추락하는 돼지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 필자는 축산물 이력표나 실제 돼지 뼈 등이 같은 층에 전시되어 있어서 듣기 전에 이미.. 2021.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