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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86

쇼윈도우를 밝히는 세 가지 압력, “삼중점”의 무대 인천 송도 신도시에 24시간 열리는 전시장이 한시적으로 들어섰다. “삼중점 (Triple point)”의 전시장은 신축건물의 빈 상가 자리에, 엄밀히 말하면 용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장소를 잠시 점거한 화이트큐브이다. 전시를 찾은 사람들은 삼면의 쇼윈도우를 따라 남은 하나의 흰벽을 축으로 진자 운동을 하듯 관람하게 된다. 도심 속 쇼윈도우를 향해 회전하며 행진하는 조용한 의례가 펼쳐지는 시간, 몇 개의 전시된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압력이 관람객의 응시를 붙잡는 이 곳은 ‘삼중점(Triple point)’이다. ‘삼중점(Triple point)’이란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의 세가지 상태가 균형을 유지하여 공존하는 특정한 온도와 압력의 지점을 말하는 화학용어이다. 이번 전시는 국동완, 민경, 이민하 세 .. 2021. 6. 27.
폭력적 창조 : 오래된 것들을 집어삼키는 새로운 것들에 관하여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몇 개의 장면들이 있다. 물이 갈라지며 새로운 땅이 나타났던 제부도, 보석인 줄 알고 어머니에게 선물한 감포 바닷가에서 주운 눈부시게 반짝이던 유리 조각, 주변 철물점에서 사 왔던 우리 집 백구 아롱이의 새로운 보금자리. 어지럽게 산재해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의 전시를 통해 이렇게 모이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첫 기획전시인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생태환경 보존’과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인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B 전시실 벽면에 재생되고 있는 ‘찰스 림 이 용(Charles Lim Yi Yong)’의 프로젝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2021. 6. 27.
나를 비추고 너를 비추는, 유리된 대변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첫 문장을 적어내고 내 생각을 담아내기까지는 나만의 글이겠지만, 자기만족용에 그치지 않고 바깥으로 빠져나간 내 글은 결국 독자들의 판단과 이해로 해석되기에 더 이상 내 글이 아니다.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내 글이 아닌, 지금 읽고 계신 모두를 위한 글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글’은 의도에 맞게 언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어 의견을 피력해야만 하니까. 글쓴이의 의도가 어떻든, 읽는 독자가 임의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마련이니까. 그러한 점에서 인천문화통신 3.0 5월 특집호 기사를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해보고자 한다. 대변한다는 것 인천문화통신 3.0 5월 특집호 기사는 ‘청년’을 주제로 기고되었다. 인천 안에 있는 광역문화재단과 기초문.. 2021. 6. 27.
공기의 모양 우리는 가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감각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보통의 풍경을 뒤엎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낯선 감각은 ‘공기’와 매우 밀접해 있다. 정서진아트큐브에서 진행한 은 김윤수, 신현정, 전희경, 이 세 명의 회화 작가가 참여한 기획전으로 공기에 대한 공감각적인 사유를 회화로 담아낸다. 우리는 과연 작가들이 경험한 공기의 어떠한 면모를 발견하게 될까?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것은 우리 본질 혹은 학습된 체계, 그리고 외부적인 환경의 요인에 의해서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언어’를 통해서 사회 속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시키려 한다. 작가들은 언어의 역할을 하는 ‘매체’를 매개로 사용하여 그들이 경험한 사회적, 물리적 상.. 2021. 5. 30.
아쿠아 유니버스 색다른 시각은 독특한 조건에서 생기기 쉽다. 난독증이 있어 세상의 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더디었던 눈은, 잘 보이는 생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데 주력했다. 아무리 조그만 생명체도 이 눈엔 잘 보였다. 이 작은 생명체가 더 작은 것들을 먹고, 때로 먹히고 맥없이 죽거나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일에 시간을 아무리 내어놓아도 지겹지 않았다. 이 작은 생명체들도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환경에 적응해 살아나가는 것을 보며, 혹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속수무책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나를 둘러싼 주변의 생물체가 어떻게 만들어져있는지, 그들은 제각각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적응해 나가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온실을 만들고, 바닷물 속 미생물과 알이 어떤 유기적 관계.. 2021. 5. 30.
기억의 지층을 드러내기 : 인천아트아카이브 우연히 태어나 자리 잡게 된 혹은 여러 이유로 이주하여 온 이 곳. 납작하게 눌린 평면도의 희미한 선으로 구분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가 나고 자란 장소는 개인이 설정한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의 감각 주위를 빙 두른다. 그 시절의 공기를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자유공원에서 아카시아꽃을 따고, 때로는 이젤과 물감을 싸들고 풀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예술로 분위기가 무르익는 신포동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미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간다. 특정 지역으로 한정짓는 수식어가 ‘예술가’라는 명사 앞에 붙는다면 그 범위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 곳에서 나고 자란, 학창 혹은 대학시절을 해당 지역에서 보낸, 과거에 거주했던 또는 현재 거주하는, 지역의 미술 현장에 꾸.. 2021. 5. 30.
오 마이 시티 다르다는 것이 더 이상 차별과 혐오가 아닌 차이로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다양성에 관한 논의를 시작 한다. 생활 양식 속에서 당연히 라는 말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각자의, 개인의 살아가는 방식은 점점 더 다양해졌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며 교류하는 공간을 도시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도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포함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과 타인과의 교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실존하게 된다. 는 이러한 도시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도시를, 이미 익숙해진 관계를 다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진행된 는 다양한 국적.. 2021. 2. 28.
송도 유원지로부터의 특별한 초대 하루에도 몇 번씩 반갑지 않은 메시지가 일상을 덮친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 비상시국은 당연했던 일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달력에 체크해두고 기다리던 전시 일정들이 하나둘씩 취소되고 조기 폐쇄되는 등 모든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송도유원지로부터의 뜻밖의 초대장을 받았다. 는 코로나19의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폐쇄하고 온라인 전시로 대체된 상황이었다. 무슨 좋은 연이 닿았는지 관계자의 배려로 오랜만에 전시장을 두 발로 자유롭게 누비며 작품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교육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전시의 핵심은 송도유원지와 관련한 생생한 시민들의 이야기와 개인 소장 사진 및 영상물,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실 관련 아카이브 자료.. 2021. 2. 28.
기억의 질량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인천은 개항 후 수많은 물자와 외국인들이 신문물을 가장 처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많은 물자들을 수용해야 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은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확보하기 위해 인천항에 창고와 건물들을 마구 지어냈다. 인천은 강제로 발전해야만 했다. 시간은 흘러 일제의 침략이 끝나 광복이 오고 과거의 아픔이 남은 건물들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리고 여기 1920년에는 일본의 화약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소금 창고였고, 1930년에는 시민들과 지성인들의 지문이 남아 있는 책방이었으며, 책방이 문을 닫고 20년 동안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공간이 있다. 이때를 기다리던 곳은 100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문화 재생 공간인 잇다 스페이스 갤러.. 2021. 2. 21.
풀잎들 그건 평소보다 흥겹고 들뜬 분위기의 광장무였다. 광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 주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비치자 하나둘 춤을 추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한 춤바람,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는 몸짓들 속에서 그녀는 스산한 온기를 느낀다. 간격을 두고 기댄 듯, 포개어진 듯, 휘청이는 듯, 휩쓸리는 듯, 흔들리는 사람들. 그것은 함께 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서로에게 기대는 몸짓이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예비하는 느린 몸짓이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여름에서 겨울까지 중국 충칭의 황저우핑 지역에 머물게 된 이경희 작가는 이미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과 단절의 시간을 마.. 20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