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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숲 무얼 보여줘야 할까. 나와 같이 동시대성 없는 쓰레기들을 모아서 흐름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정 없이 잘하고 싶다. 항상 가진 욕구불만을 차라리 내비쳐 보이고 싶다. 차라리 선입견을 이용하여 이미 세워진 것을 부수고 싶다. 쓰레기는 일상에 있다. 실제로 그렇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집이란 없었다. 몸을 누일 곳뿐 아니라, 관념이 정착할 곳도 적당히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비틀거렸다. 누가 잠깐 안아주면 그뿐이었다. 다시 흩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눈을 고정할 수 없었다. 상대하는 것은 온통 흔들렸다. 그냥 '그렇구나' 했다. 남이 하지 않는 걱정을 맡아 했고, 남이 하는 걱정도 구태여 점검했다. 물론 답을 알고 싶지만, 논증하기 성가시다. 다시 판자에 올라 바들바들 떤다. 그 .. 2021. 2. 21.
기억의 질량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인천은 개항 후 수많은 물자와 외국인들이 신문물을 가장 처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많은 물자들을 수용해야 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은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확보하기 위해 인천항에 창고와 건물들을 마구 지어냈다. 인천은 강제로 발전해야만 했다. 시간은 흘러 일제의 침략이 끝나 광복이 오고 과거의 아픔이 남은 건물들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리고 여기 1920년에는 일본의 화약 제조를 목적으로 하는 소금 창고였고, 1930년에는 시민들과 지성인들의 지문이 남아 있는 책방이었으며, 책방이 문을 닫고 20년 동안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공간이 있다. 이때를 기다리던 곳은 100년의 세월을 안고 있는 문화 재생 공간인 잇다 스페이스 갤러.. 2021. 2. 21.
풀잎들 그건 평소보다 흥겹고 들뜬 분위기의 광장무였다. 광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 주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비치자 하나둘 춤을 추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한 춤바람,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는 몸짓들 속에서 그녀는 스산한 온기를 느낀다. 간격을 두고 기댄 듯, 포개어진 듯, 휘청이는 듯, 휩쓸리는 듯, 흔들리는 사람들. 그것은 함께 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서로에게 기대는 몸짓이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예비하는 느린 몸짓이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여름에서 겨울까지 중국 충칭의 황저우핑 지역에 머물게 된 이경희 작가는 이미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과 단절의 시간을 마.. 2021. 2. 21.
<포용과 혁신의 지역문화>를 위한 생각들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던 우리의 발걸음이 결국은 뜨거운 안녕을 고하지 못하고 지루하게도 올해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코로나를 처음 만나 약간은 당황했지만 사스나 메르스처럼 곧 쉽게 이별 할 것처럼 무심한 척 하려던 그때도 코끝이 시렸던 겨울이었는데 또 다시 겨울을 맞는다.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수많은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거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기대와 전혀 다르거나 혹은 예상과 달리 우연이라고 하기엔 필연처럼 “그래, 바로 이것이 예술이지” 뜨겁게 열광할 만한 결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문화예술분야에 있어 정말 뜨겁게 열광해야했으나 짜게 식어버린 정부 계획 발표는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일 것이다.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은 .. 2021. 2. 21.
우실 2020년 6월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약 400km를 달려 전라남도 신안의 증도로 향했다. 두 개의 섬을 잇는 다리를 지나는 그 일대에는 양파 수확 시기라 성인 남성 주먹만 한 양파가 밭 곳곳에 널려있었고, 우두커니 서 있는 수많은 붉은색 자루에 담긴 양파 더미의 조형미에 놀라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증도의 생활은 날마다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며 이어졌다. 해가 지고, 물이 나고 드는 광경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차올랐고, 하루가 지나가는 과정은 도시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갯벌에 나가 짱뚱어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하루가 다 가기도 하고, 엽낭게가 남긴 모래 구슬을 쫓다 방향을 잃기도 했다. 연이어지는 질병에도 장마는 끊임없는 비를 퍼부었고, 태풍이 지나갔으며, 굽은 어르신.. 2021. 2. 7.
<점점점> 프로젝트: 지역성을 프로젝트로 하는 공간들을 일별하기 프로젝트를 이야기해보자. 처음 생긴 지원사업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 지원사업의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의 문화생태 활성화를 위한 예술실험 지원사업”으로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공간의 힘은 공간이 지속하는 힘에서 나온다. 공간은 프로그램을 통한 공간의 정체성과 역사를 구성해나가게 된다. 공간의 축적된 데이터는 아카이브로 연장될 수 있다. 따라서 공간 자체를 “예술실험”으로 구성한 것에는 시간의 단위에 관한 언급으로 볼 수 없다. 보통의 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행정이 요구하는 결괏값과 그 납기 기한이 있는 일회성적인 의미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인천의 문화생태 활성화”는 “예술실험 지원사업”을 통한 이차적인 결과로, 그 결과를 직접적인 목표로 잡기에는 간극이 있다. 바로 이 캐치.. 2021. 2. 7.